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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기대를 안고 구매한 브레빌 870. 근사한 디자인에 반하고, 이제 매일 아침 카페 퀄리티의 커피를 마실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레었을 겁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요? 첫 샷을 내리는 순간, 10초도 안 돼 멀건 커피가 콸콸 쏟아지거나, 반대로 끙끙거리던 머신이 커피 한 방울 겨우 떨어뜨리진 않았나요?

결과물은 끔찍하게 시거나, 입안이 텁텁할 정도로 쓴 에스프레소. '역시 나는 안되는구나', '기계가 불량인가?' 하는 생각에 비싼 원두만 버려가며 좌절감을 느끼고 계실 겁니다. 하지만 포기하기엔 이릅니다. 문제는 당신의 손이나 원두가 아닌, 바로 '분쇄도' 하나를 잡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본격적인 기술에 들어가기 앞서, 완벽한 에스프레소를 위한 여정에는 좋은 장비만큼이나 훌륭한 '재료'가 중요합니다. 지금 사용하는 원두가 내 취향에 맞는지, 혹은 더 나은 경험을 선사할 새로운 원두는 없는지, 다양한 스페셜티 원두의 세계를 탐험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홈카페 원두 추천, 스페셜티 커피 구독, 에스프레소 블렌드 /이 글에서 제시하는 4단계만 차근차근 따라오시면, 당신도 비싼 원두를 더 이상 낭비하지 않고 매일 아침 황금빛 크레마가 가득한 에스프레소를 즐기게 될 것입니다.

 

모든 문제의 시작, '분쇄도' 이해하기 (내부/외부 그라인더 설정)

에스프레소 추출의 원리는 간단합니다. '뜨거운 물이 높은 압력으로 잘게 분쇄된 커피 가루(퍽)를 통과하면서 커피의 성분을 녹여내는 것'입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변수가 바로 커피 가루의 굵기, 즉 '분쇄도'입니다.

  • 분쇄도가 너무 굵으면? 물이 너무 빨리 통과해 커피 성분이 충분히 녹지 못한 '과소추출' 상태가 되어 신맛이 강해집니다.
  • 분쇄도가 너무 가늘면? 물이 잘 통과하지 못해 커피 성분이 너무 많이 녹아버린 '과다추출' 상태가 되어 쓴맛과 떫은맛이 강해집니다.

브레빌 870 사용자가 가장 먼저 알아야 할 사실은, 그라인더 조절 다이얼이 '두 개'라는 점입니다. 많은 초보자들이 옆면에 있는 외부 다이얼만 돌리다가 한계를 느끼고 좌절합니다.

  1. 외부 분쇄도 다이얼 (1~16단계): 머신 왼쪽에 위치한 가장 눈에 띄는 다이얼입니다. 숫자가 작을수록 가늘게(Fine), 클수록 굵게(Coarse) 분쇄됩니다. 보통 에스프레소는 3~8 사이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2. 내부 분쇄도 조절 (1~10단계): 원두 호퍼를 분리하면 보이는 상단 버(Burr)에 숨겨진 비밀 병기입니다. 공장 출고 시 보통 6에 맞춰져 있습니다. 만약 외부 다이얼을 1까지 조여도 추출이 너무 빠르다면, 내부 분쇄도를 5, 4, 3으로 한 단계씩 더 가늘게 조절하여 전체적인 분쇄 범위를 옮길 수 있습니다. (주의: 반드시 전원을 끈 상태에서 조절하세요!)

새로운 원두를 샀다면, 먼저 내부 분쇄도는 5~6에 두고, 외부 분쇄도 다이얼로만 조절을 시작하는 것이 기본입니다.

 

초보자를 위한 '샷클락' 기준 분쇄도 조절 4단계

이제 이론은 충분합니다. 맛을 보기 전에, 우리는 '시간'이라는 객관적인 기준으로 분쇄도를 맞춰야 합니다. 이를 '샷클락'을 본다고 합니다. 우리의 목표는 '18g의 원두를 사용하여 25초~30초 동안 36g의 에스프레소를 추출하는 것'입니다. (1:2 비율)

아래 4단계를 그대로 따라 해 보세요. 저울과 스마트폰 스톱워치 기능은 필수입니다.

  • 1단계: 기준점 설정하기먼저 원두의 양, 즉 '도징량'을 18g으로 고정합니다. 그라인더의 분쇄량(GRIND AMOUNT) 다이얼을 조절하거나, 저울로 포타필터 무게를 재가며 정확히 18g을 담습니다. 내부 분쇄도는 6, 외부 분쇄도는 8 정도로 조금 굵게 시작합니다.
  • 2단계: 첫 샷 추출 및 시간 측정18g의 원두를 레벨링 툴로 고르게 펴고, 탬퍼로 수평을 맞춰 꾸욱 눌러줍니다(탬핑). 머신에 장착하고, 잔을 올린 뒤 '2샷' 버튼을 누르는 동시에 스톱워치를 시작하세요. 커피가 나오기 시작하는 순간이 아니라, 버튼을 누른 순간부터 시간을 잽니다.
  • 3단계: 결과 분석 및 조절추출이 끝나면 시간을 확인합니다.
    - 만약 15초 만에 추출이 끝났다면? 과소추출입니다. 물이 너무 빨리 통과했다는 뜻이므로, 분쇄도를 더 '가늘게' 조절해야 합니다. 외부 다이얼을 8에서 6으로 두 단계 내려보세요.
    - 만약 40초가 넘도록 추출이 계속된다면? 과다추출입니다. 물이 너무 느리게 통과했다는 뜻이므로, 분쇄도를 더 '굵게' 조절해야 합니다. 외부 다이얼을 8에서 10으로 두 단계 올려보세요.
  • 4단계: 반복 및 미세 조정조절된 분쇄도로 다시 1~3단계를 반복합니다. 2단계씩 크게 조절하며 목표 시간인 25~30초 범위에 근접했다면, 그때부터는 다이얼을 한 칸씩만 움직이며 미세 조정을 합니다. 이 과정을 '그라인더 다이얼링(Dialing in)'이라고 부르며, 모든 바리스타의 기본입니다.

 

그라인더 다이얼링 과정은 사용하는 원두의 종류와 로스팅 상태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집니다. 약배전 원두는 단단해서 더 가늘게, 강배전 원두는 무르기 때문에 더 굵게 분쇄해야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내 머신과 잘 맞는 에스프레소 블렌드 원두를 찾아보는 것도 실력 향상의 지름길입니다.

 

 

에스프레소용 원두 커피 추천, 당일 로스팅 원두, 원두 쇼핑몰

목표 시간에 맞춰 추출에 성공했다면, 이제 당신의 에스프레소 맛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아졌을 겁니다.

 

'분쇄도'가 전부가 아니다? 압력 게이지와 퍽(Puck) 상태 읽는 법

시간을 기준으로 분쇄도를 맞췄다면, 90%는 성공한 셈입니다. 하지만 나머지 10%의 디테일을 잡기 위해 우리는 몇 가지 단서를 더 활용할 수 있습니다. 바로 압력 게이지와 추출 후 남은 원두 퍽입니다.

  • 압력 게이지 읽기: 브레빌 870의 상징인 압력 게이지는 추출 시 포타필터 내부에 걸리는 압력을 보여줍니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바늘이 'ESPRESSO RANGE'라고 표시된 구간의 정중앙(11~1시 방향)을 꾸준히 가리키는 것입니다. 바늘이 이 구간에 못 미치면 압력이 부족하다는 뜻(과소추출 가능성), 너무 넘어가면 압력이 과하다는 뜻(과다추출 가능성)이므로 분쇄도 조절의 단서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 추출 후 원두 퍽(Puck) 확인하기: 추출을 마친 포타필터 안의 원두 찌꺼기를 확인해보세요. 잘 추출된 퍽은 단단하고 물기가 적어 '똑'하고 깔끔하게 떨어집니다. 반면, 퍽이 질퍽하고 물기가 흥건하다면(머드 퍽), 분쇄도가 너무 굵거나 도징량이 부족하여 물이 너무 쉽게 통과하며 채널링(물길 현상)이 일어났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 탬핑의 일관성: 분쇄도와 도징량이 완벽해도, 탬핑(원두를 다지는 행위)을 할 때마다 힘이 달라지거나 수평이 맞지 않으면 추출은 매번 달라집니다. 항상 일정한 힘으로, 수평을 유지하며 탬핑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세 가지 추가적인 단서를 활용하면, 당신은 단순히 시간을 맞추는 것을 넘어 왜 그런 결과가 나왔는지 이해하며 에스프레소를 추출하는 단계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기본 추출에 자신감이 붙었다면, 이제는 탬퍼, 레벨링 툴, 바텀리스 포타필터와 같은 전문 바리스타 용품으로 당신의 홈카페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볼 시간입니다. 정확한 도구는 당신의 실력을 더욱 빠르게 향상시켜 줄 것입니다.

 

브레빌 870 악세사리, 바텀리스 포타필터, 커피 탬퍼, 도징링

원두 낭비를 멈추고, 진짜 '홈카페'를 즐기세요

브레빌 870으로 완벽한 에스프레소를 내리는 데에는 정해진 '마법의 숫자'가 없습니다. 원두의 종류, 로스팅 날짜, 심지어 그날의 습도에 따라서도 최적의 분쇄도는 계속 변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배운 '시간을 기준으로 분쇄도를 조절하는 4단계 방법'은 그 변화에 대응하는 가장 확실한 기준점이 되어 줄 것입니다. 더 이상 맛없는 커피 때문에 스트레스받으며 비싼 원두를 버리지 마세요. 약간의 인내심을 갖고 연습하다 보면, 어느새 당신은 매일 아침 자신의 손으로 내린 완벽한 커피 한 잔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진정한 '홈 바리스타'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